
제주 1개월 세가 13일째 트윗은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제주 4·3 사건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다. 그렇게 특별법이 제정된 2000년이 되어 처음으로 그 이름을 듣고 듣게 되었다. 그 후 20년간 조금씩 조금씩 알면서 퍼즐을 맞추게 된 비극의 역사 제주 4·3 사건. 그리고 오늘 을 맞아 봉개동에 있는 43평화공원을 방문했다.
아무래도 오전은 기념식으로 복잡해질 것 같고, 기념식이 끝난 오후 2시에 방문을 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4·3평화기념관.
동백은 4·3 사건으로 희생된 수많은 영혼을 상징하는 꽃이다. 다른 곳에서는 깨끗하게 보일 뿐이었던 꽃이 여기에서는 슬프게 느껴졌다.
기념관의 상설 전시실로가는 길.
, 삼일절 기념행사가 열린 제주관덕정 부근에서 아이가 기마경찰의 말에 부딪히는 사건이 발생해 이에 항의를 하고 있던 주민에게 경찰이 발포해 6명이 사망한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그 후 6년간 제주는 심한 살해 현장으로 변한다.
당시 남과 북을 나누는 첨예한 이념의 대립, 정치상황, 포옹한 미군의 섭정 등이 얽혀 사건은 걸을 수 없게 되어 결국 아무 죄도 없는 제주 양민이 미군과 이승만 정부군/서북청년단에 학살되어 희생된다.
4·3평화기념관 상설전시장에서는 그 병으로 잔혹했던 과거의 역사를 비교적 담담하게 풀어나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4관에서 학살당한 양민의 모습이 보였을 때는 눈동자가 뜨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주 양민의 학살은 전쟁이 시작되어 더욱 잔혹하고 극적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이곳은 특별 전시관인 다란 슈글입니다.
1991년에 발견된 4·3 사건 실체의 일부인 다란슈글의 모양을 재현한 바.
학살을 피해 달란슈그르에게 피신하고 있던 11명의 주민이 굴 밖에 나오지 않으면 정부 토벌군이 동굴 입구에 연기를 빨아 질식사시킨 현장이다. 희생된 11명 중에는 여성과 9세의 아이도 있었다.
이후 제민일보와 제주4·3연구소가 현장조사를 하고 희생자의 신원과 유족 등 사건의 전모를 밝힌 뒤 이들을 햇볕이 잘 드는 장소에 묻으려고 했지만 당시 노태우 정권에서 극도의 방해 공작을 펼쳤다. 더 심했던 것은 이런 양민학살의 현장이 달란시글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 수십 곳에서 이러한 형태의 집단 학살의 증거가 남아 있다.
4·3 사건에 대해 조금씩 알 때마다 더 화내게 되는 것은 이런 학살을 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그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고, 이후 과거 정권도 아무 반성도 회개도 없이 덮을 뿐 철수에만 급급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학교의 국사 시간에 가르칠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 14,000여명이 학살됐다고 하지만, 행방불명이 된 보다 많은 사람들까지 하면 30,000명이 넘는 희생자가 있다고 추정되며 이는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다고 한다.
늦었지만 2000년 4·3 사건 특별법이 제정돼 그 진상을 밝히는 첫걸음을 분리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국정책임자로 처음 사과해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불충분했던 유족에 대한 보상안, 희생자 명예회복, 추가 진상조사 등이 포함된 3차 개정법이 통과했다.
그렇게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는 제주.
마지막으로 희생된 제주도민의 사진이 있는 복도를 걸어 전시장을 나섰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밟은 4·3 사건의 진상조사와 피해보상. 더 적극적으로 그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정부가 나와 노력하기를 바란다.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이 늦었지만 지금도 안식을 받고 휴식을 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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